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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과 나

작성자:

탈존

조회: 3530 등록일: 2017-03-30

내가 중생이라서 그렇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이나 상相이라는 말은 그나마 납득하겠는데 공空이나 무無 같은 말들은 알 듯 말 듯 도무지 그 개념이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불경의 개념을 오히려 성서를 통해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성서란 서양 사람들이 바이블이라고 부르는 그 성서지만 기독교 교리를 일컬음은 아니다. 성서를 읽을 때에는 아주 조금이나마 느낌도 오고 감동도 받는데 그들의 교리는 불경 이상으로 너무나 난해難解하여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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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의 하느님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人格의 신, 질투嫉妬하는 신이 아니다. 성서에 그렇게 써있다지만 그 성구만이 아닌 전체를, 즉 나무가 아닌 숲을 보듯 성서를 읽다보면 하느님이야 말로 너무나 크고 위대偉大해서 인격으로 묶을 수 없는 존재이고 모든 것의 근원根源이며 모든 것의 현재現在 그 자체이기에 숭배조차 필요치 않은, 아무 부담 없이 나 홀로 마음으로 만나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기독교 모든 종파의 숭배사상崇拜思想으로는 오히려 나의 하느님을 만나는데 혼란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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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는 신은 늘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주는 분이다.
기독교 교리의 신처럼 따로 떨어져 있거나 감시하거나 심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더더욱 천당이니 지옥 따위로 유혹誘惑하거나 협박脅迫하지도 않는다.
아울러 그분은 단 한 번도 내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아무리 추악한 생각을 해도, 마음속의 간음姦淫을 수없이 저질러도 나를 버리거나 단죄斷罪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바라봐 줄 뿐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숨을 쉬자! 라고 계획하거나 의식하며 숨을 쉬는 존재는 없다. 밥을 먹었으니 소화를 시키자! 라고 생각해서 소화시키는 존재 또한 없다. 길을 가며 왼발, 오른발, 계산하며 걷는 존재도 없다. 이 모든 일들이 그저 무의식중에 저절로 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신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만큼 그분은 사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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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시때때로 신을 떠나는 자는 오히려 나(我)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느라, 덧없는 명리名利를 찾아 헤매느라, 오직 내 욕심을 채우려고 이웃과 갈등을 빚느라, 원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세상을 원망하느라 철없이 투정하며 무작정 가출家出하는 인간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돌아왔을 때 언제나 받아주시기에 인색함이 없는 분이 신이시다. 돌아온 탕아蕩兒를 반기듯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조건 없이 받아주신다. 여전히 나는 숨을 쉬고 있으니까. 여전히 먹고, 소화하고, 배변排便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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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단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어리석은 나는 어제도, 오늘도, 하루에도 수십 번을 마다않고 무단가출을 했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온 탕아가 되곤 한다.
그 무엇을 하든 평생 하느님과 떨어져 있어보지 않았던 자신을 자각自覺하면서도, 어찌하여 툭하면 그분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허망한 환영幻影에 불과한 세상사에 휩쓸리다 보면 시시때때로 신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자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것이 곧 빵과, 명예와, 자존심의 허망虛妄한 환영에 사로잡혀 화를 내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다.
순간, 순간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생각에 의한 왜곡歪曲된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는 나. 이런 순간들이 하느님에게서 스스로 도망 나온 탕아의 세상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그럴 수밖에 없는 모습이 나의 초라한 초상肖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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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들숨과 날 숨 사이에 불과한 생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신으로부터 떨어졌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로 삶을 허송한 것일까. 얼마나 실체 없는 생각에 매달려 허망한 세월을 살아온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염치없게도 또 다시 신에게 돌아왔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될는지, 또 다시 탕아가 되어 집을 나가는 때가 언제일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내가 또다시 탕아가 되더라도 부디 당신에게 돌아올 길만큼은 열어놓아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또다시 탕아가 되더라도 하느님께 되돌아 올 수 있는 길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등불을 밝혀 주시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알아차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져서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가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언젠가 다시는 탕아 됨이 없이 하느님 안에 안주安住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기를 바랄뿐이다. 그 등불이 바로 나만의 성서聖書요, 불경佛經인 셈이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선지식들의 가르침처럼 목사나 신부, 스님들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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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세상일로 힘겨운 요즘, 나는 지금 하느님을 느끼느라 조용히 앉아 진지하게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고 있다.
이 순간에는 잡다한 세상사는 물론, 성서나 불경조차 뇌리腦裏에서 지워버린다. 단순單純해지는 것이다. 가르침 역시 기억에 남아있을 리 없다. 성서말씀이나 불경말씀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障碍要因이므로.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은 들숨 날숨에서 가장 손쉽게 느껴지므로. 들숨 날숨, 사이를 알아차리는 그 순간순간들이 바로 나만의 안식일安息日이므로.
그리하여 너무나 크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하여 이렇듯 나를 완벽完璧하게 버린 순간에야 만나지는 나의 하느님을 통해 비로소 공과 무의 의미를 인지認知할 수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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