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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었다 갑시다.(영화 밴허) - 탈존 영화

작성자:

탈존

조회: 4870 등록일: 2016-12-27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탄핵트리까지 등장하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크리스마스가 되고 말았지만 일 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아담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당에 오신 예수님의 존재의미를 묵상해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본 영화들 중에 예수의 존재의미를 살려낸 작품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은 영화, 1959년 MGM사에서 제작하고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가 감독한‘벤허’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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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는 러닝타임 210분에 70m/m대형화면, 그에 더하여 작품, 감독, 남우 주, 조연, 촬영, 미술, 녹음, 음악, 편집, 효과, 의상상 등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휩쓸어 기염을 토했던 영화다.
당시로써는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한 1,500만 불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10년간의 제작기간에 촬영만도 1년이 걸렸다. 그에 더하여 10만여 명의 출연인원,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필름소모, 15분에 걸친 박진감 넘치는 전차경기 신을 위해 15,000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벤허는 1880년 출판과 동시에 200만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월레스(Lew Wallace)의 동명소설로써 1926년 무성흑백영화로 제작되었었던 것을 천연색으로 리메이크하였다.

영화는 예수탄생과 동방박사들의 경배장면부터 시작한다. 줄거리는 주인공 벤허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예루살렘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해온다. 선발부대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호민관 메살라(스티븐 보이드Stephen Boyd분)는 어렸을 때의 친구 벤허(찰턴 헤스톤Charlton Heston분)와 반갑게 만난다.
유대인 벤허 집안은 예루살렘에서 소문난 부호다. 벤허는 충성스러운 노예이자 집사의 딸 에스터(하야 하라렛Haya Haraareet분)가 결혼하게 되자 그녀의 노예 신분을 결혼선물로 풀어준다. 비록 노예 신분이지만 벤허와 에스터는 어렸을 때부터 은근히 좋아하는 사이다.
벤허에게 동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통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한 메살라는 신임 총독 취임식 날, 장쾌하고 화려한 행진을 구경하던 누이의 발밑에서 기와 한 장이 떨어져나가 공교롭게도 신임 총독의 머리에 맞은 사건이 벌어지자 벤허 일가를 반역죄로 몰아 모친과 누이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벤허를 로마전함의 노를 젓는 노예로 보낸다.
마케도니아와의 해전에서 벤허는 로마의 집정관 아리우스(잭 호킨스Jack Hawkins분)를 구해주고 그의 양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메살라를 만난다. 
 

환경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어린 시절을 예루살렘에서 함께 자란 벤허와 메살라는 천진난만한 소년들이었다.
메살라는 유대총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로마로 돌아가 장성하면서 그 어떤 가치보다 로마의 영광을 숭배하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의 꿈이었던 유대주둔군 사령관인 호민관이 된 것이 그 무엇보다 스스로 자랑스럽다.
“답을 드리죠. 이념은 이념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나타나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주리라 믿는 이념과 싸울 방법이 없었다고 하소연하는 전임 사령관에게 명쾌하게 답을 내놓는 메살라의 자신감이다. 로마는 메살라를 로마의 영광 이외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맹신자로 변화시킨 것이다. 심지어 이민족인 벤허까지도 로마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 메살라의 정의다.
“그들은 내 동족이야. 난 우리 민족의 미래를 믿어.”
“현명하게 처신해. 로마세상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우리의 세계 통치는 운명이야. 모든 육지와 바다가 로마로 통한다고. 로마의 건축과 문명은 인류의 영광이야.”
메살라에게는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벤허의 입장을 고려해볼 생각조차 없다. 심지어 우정의 이름을 빌어 유대인 강경분자들을 밀고할 것을 요구한다. 밀고할 수 없다는 벤허의 단호한 태도에 거침없이 적으로 돌아설 만큼 자신의 가치관에 몰입되어버린 것이다.
“너는 내 요청에 도움을 거절했어. 이건 네가 선택한 길이다.”
총독행진 때 떨어진 기왓장이 벤허의 고의적 도발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확인했음에도 가차 없이 전함의 노예로 보내면서 메살라가 했던 말이다. 벤허가족으로 끝나지 않고 집사의 양다리마저 잘라버릴 만큼 자신의 기준에만 충실한 냉혈한이 되고 말았다.
벤허는 어떤가.
노예집사의 딸 에스터가 결혼한다는 말에 남편이 지불하겠다는 몸값도 받지 않고 자유를 주는 후덕한 주인이며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스터의 노예반지를 자신의 부인감이 생길 때까지 끼겠다고 할 만큼 사랑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메살라에게 반역의 누명을 쓰고 로마전함의 노예가 되는가 하면 어머니와 누이마저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문둥이(癩病)가 되는 불운을 겪으며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고 만다.
전함의 노예로 끌려가면서 벤허가 메살라에게 맹세한다.
“복수하고야 말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기를 바란다.”
원한에 가득차서 복수 이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지 못하도록 변해버린 벤허다. 상황에 의해 옹골차게 변하기는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에스터에게 부탁하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벤허에게 말하지 마. 옛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
문둥이가 된 지금의 추한 모습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옛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역시, 일종의 집착이다.
전차경기장에서의 벤허와 메살라는 너나할 것 없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시종 비겁한 경기를 행하는 메살라에게는 승리의 집착밖에 남은 것이 없다.
“우리의 경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영원히…….”
전차경기에서 패하고 죽어가는 순간에 메살라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가 문둥이계곡에 있음을 알리면서 한 말이다.
메살라는 다른 적수를 죽이고자 바퀴에 톱니바퀴가 붙은 그리스 전차를 사용했었다. 스스로가 판 함정에 자신이 빠져 죽는 순간에 이르렀음에도 벤허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하다. 무엇이 천진난만했던 메살라를 죽은 이후까지 벤허와 싸우도록 하였는가. 그것은 로마의 영광이라는 메살라의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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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복수는 하느님이 대신해주는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악인이 망하는 것은 하느님이 복수를 해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리를 펴준 자연의 섭리에 의해 그리되는 것일 뿐.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의지다.
벤허가 로마전함에서 노 젓는 노예로 3년이 지났을 때, 총사령관으로 부임해온 집정관 아리우스는 3년간이나 노예생활을 하고도 눈동자에 정기가 살아있는 벤허에게 관심을 보인다.
전투항해, 공격항해, 충돌항해 등 연이은 시험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노예들 중에 끝내 버텨내는 벤허에게 하는 말이 이렇다.
“지극히 반항적이면서도 자제력을 가졌군. 네 두 눈은 증오를 가졌다. 좋아. 증오는 삶의 원동력이지. 나에게 검투사들이 있다. 검투사를 해볼 생각은 없는가?”
아리우스 부름을 받고 그가 잠든 사이에 집정관실로 들어오고서도 해코지 하지 않은 벤허에게 묻는다.
“나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전 죽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리우스는 해전이 벌어지자 벤허의 사슬을 풀어준다.
그 명령이 전함이 침몰했을 때 아리우스 자신의 생명을 구한다. 벤허의 집념이 아리우스의 마음을 움직여 두 사람 모두에게 기회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기보다는 벤허가 살아 돌아가 복수하기를 선택했기에 만들어진 기회다. 벤허가 좌절했더라면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도움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아리우스의 양자가 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만난 아랍의 한 족장과의 인연도 벤허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회다. 훌륭한 백마를 지닌 족장이 메살라와의 전차경기를 종용한 것도 벤허의 집념으로 형성된 복수심이 계기였다. 로마에서 전차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기회를 얻고자 하는 집념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유다 벤허. 네가 어떻게 집정관의 이름을 얻었지?”
“자네가 부린 마술로. 네가 나를 전함의 노예로 보냈잖아.”
아리우스의 아들이 되어 돌아온 벤허와 메살라의 대화다. 이렇듯 인간의 의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조차 뜻밖의 사태로 반전시키기도 한다. 하느님이 창조해낸 섭리에 인간의 의지가 영합했을 때 일어나는 상황의 변화일 뿐, 하느님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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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영화 벤허에 등장하는 예수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늘 뒷모습을 보이거나 앞모습일지라도 상대에게 가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로마군단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거치는 나사렛에서 동네 어른들에게 게으르다 비난 받으며 등장하는 예수 역시 뒷모습이다. 벤허가 전함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물조차 주지 않아 절망에 빠졌을 때, 로마군 장교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물을 먹여주는 예수의 모습도 하반신과 뒷모습만 등장한다.
벤허가 로마전함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동방박사 발데사르를 만난 것도 예수가 매개媒介였다. 아랍인 족장이 전차경기로 메살라에게 복수하라 권했을 때 벤허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며 거절한다. 그 말에 발데사르가 이의를 제기한다.
“살인을 말하는 군요. 아무리 몹쓸 짓을 했어도 살인은 안돼요, 악한 짓을 행한 자는 언젠가 벌을 받습니다.”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삶이 곧 기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고정관념과 다른 생각, 그 자체가 예수다. 로마전함에서 아리우스를 만난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기적을 믿지 않는 벤허의 변화를 유도하는 다른 생각이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집에서 만나 벤허의 집념이 되어버린 원한을 녹여 주려고 노력하는 에스터도 예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녀가 벤허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권하면서 하는 말이 이렇다.
“여전히 그 옛날 기왓장이 떨어지네요.”
“당신에게서 메살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나는 당신을 잃었어요,”
결국 어머니와 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이 벤허의 얼어붙은 마음을 변화시켰다.
에스터와 함께 어머니와 누이 두 사람을 예수에게 데려가지만 예수는 처형당한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가 쓰러졌을 때 벤허는 로마병사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물을 먹여준다. 벤허가 전함으로 끌려갈 때 예수가 물을 먹여주었듯이.
예수가 처형당하는 순간 뇌성벽력과 폭우 속에서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는 문둥병이 씻은 듯이 낳았다. 이것이 우리들의 예수다.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게 해주는 변화의 계기가 예수라는 것이다.
삶이 기적이듯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완벽하게 마음을 열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 변화의 계기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과 일체되는 통로를 밝혀주는 길(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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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는 예수의 탄생으로 시작해 예수가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따라서 한 남자가 증오에 찬 복수심을 버리고 사랑과 용서로 귀의하는 예수의 가르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분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노출하지 않은 절묘한 연출이 대부분의 성서영화들과는 다른 예수의 존재의미를 재조명하게 해준다.
영화 벤허에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몇 가지 명장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전차경기를 빼놓을 수 없다. 15,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어 3달 동안 촬영했던 전차경주 장면은 당시의 기술여건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영상이다.
경주시작 부터 음악도 없이 관중들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 채찍 소리만이 어우러져 긴박감을 배가시킨다. 오히려 CG기술이 발달한 최근영화들이 조잡해 보일 정도다.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해전海戰장면도 압권이다.
벤허와 메살라가 재회했을 때 경쟁하느라 던진 창이 십자가에 박혀 파르르 떠는 모습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이들의 갈등을 암시했던 장면 역시 관객을 자신의 감성세계로 이끌어 들이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재능을 돋보이게 한다.
항간에는 이 영화에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역할이 알려진 것보다 미미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루머들이 벤허의 가치를 희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얻은 감동이 있다면 성서 속에 있었던 예수를 우리의 삶으로 이끌어 내어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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